"......"
세상에서 떠올릴수 있는 온갖 종류의 욕이란 욕은 외부 확성기에다 대고 퍼부어대는 아준의 FRX인 '칼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훈련장 한 가운데에서 여전히 아크로배틱한 포즈를 취해서 마치 현대미술가가 세워놓기라도 한 전위예술품을 방불케 하는 아준이 서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훈련장을 한눈에 바라다볼수 있는 '전망대'에 있는 세사람-정장차림에 안경을 쓴 마른 체형의 무기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와 군 장성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 그리고 아름다운 금발 을 어께 아래로 내린 고혹적인 미모의 여성은 할말을 잃고 있었다.
"......네, 지금 현재 아준의 전력화를 막고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저 아준의 파일럿....'나가르' 라고 할수 있겠군요."
"빌어먹을! 그 Dr Q인지 뭔지! 데체 저따위 괴상한 시스템을 MSN에 달아놓고서 '내 딸애가 선택한 사람이니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라고 은근슬쩍 발뺌하고 말이야! 젠장 누가 그 능글맞은 얼굴 뒤에서 웃고있는줄 모르냔 말이야!"
이미 방안에 있는 사람따윈 안중도 없이 불만을 펑펑 터뜨려내는 군장성-슈크 장군이 못참겠다는듯이 가슴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실내에서는 금연입니다 장군님"
"알아! 그냥 물고만 있는거다 물고만!"
오른손에 든 지포라이터를 어색하게 다시 주머니에 집어놓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앙다문 장군의 얼굴은 이미 울그락푸르락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흘깃 바라본 금발의 여인-캐서린 N 웰링턴 기술중위는 무심하게 자기 손에 들려있는 '아준'에 대한 모든것이 수록된 메뉴얼북에서 MSN 항목을 펼쳣다.
일인즉슨, 지금으로부터 3주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것이다.
아준의 전용 MSN은 '쌍둥이'로 설계되었다. 쌍둥이가 아니라 '자매'의 형식으로, 한 FRX에 두기의 MSN을 사용한것은 아준을 제외하면 가장 최근에 개발된 KFRX시리즈 3기중 제 1번기 '설웅제'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었다.
원래는 설웅제의 '의도하지 않은 사고'에 의해서 급조된 시스템이었지만, 현재 아준의 실전배치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설웅제는 그동안 기존의 FRX들이 보여준것과는 다른 양상의 상당히 우수한 전과를 올리고 있는것이다.
때문에 설웅제의 MSN을 설계한 Dr.Q는 이러한 '트윈 MSN에 의한 병렬 정보 연산처리 시스템'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자신이 개발하기로 맡은 아준의 MSN은 본격적인 '트윈 MSN'시스템을 채용하기로 하고 메인 MSN인 '파르바티'와 주로 화기관제, 전투시스템 연산의 역활을 맡는 MSN '칼리' 쌍둥이 MSN을 개발한 것이다.
거기까지 였으면 그나마 '쌍둥이의 평범한 MSN'으로 끝났겠지만, Dr.Q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하나의 이상한 시스템을 '파르바티'에게 집어넣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바로 M.M시스템, 즉 '맞선'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MSN의 메인 파일럿 인식은 지극히 수동적이었다. 즉 본인이 선택하는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초기 FRX에서는 간혹 '파일럿과 MSN의 부조화'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었다.
파일럿이 MSN의 성격을 맞춰주지 못하던가, 호흡을 맞추지 못하던가, 그리고 FRX라는 종래의 병기와는 완전히 다른 사상의 기동병기에 대해 파일럿의 적응도와 이해도가 떨어지는등의 여러 문제가 산출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FRX의 파일럿에 대한 커리큘럼, 교본,선발기준등이 마련되었다곤 하지만 지금까지 MSN의 개발자들의 골머리와 군 관계자들의 골머리를 썩힌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Dr.Q는 이러한 '상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M시스템을 만들어낸것이다.
M.M시스템이란 한마디로 'MSN 스스로 자신에게, 그리고 FRX의 조종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상대를' 선택 하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정확한 판단 기준이나 연산구조는 공개를 하고 있지 않고 있지만 여하튼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낸것이었다.
그리고- 인도 육군에 아준이 인도되면서 MSN들도 인도되고,
너무나 경솔히ㅡ지극히 '상식적인 군인'으로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아준 파일럿 후보 명단중'에서 선택을 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M.M시스템이 가동된 순간, MSN '파르바티'는 바로 군 기지를 '뛰쳐나갔던' 것이다.
마치 극동의 한 섬나라의 코스프레어,디자이너,뮤지션,만화가 라는 4탕을 뛰는 고딕 페티시스트가 그린 로봇이 나오는 범우주적 러브스토리를 그린 만화의 1권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난리도 아니었지, 뉴델리 온 시내에 거의 계엄령 비슷하게 내려졌으니까. 젠장, 설마 M.M 시스템의 '검색범위'가 '인도 전역'으로 설정된건줄 누가 알았냐고 망할 Dr같으니...'
그리곤 일주일후, 홀연히 파르바티가 데려온것이, 현재 IFRX 아준에 타고 있는 나가르 라는, 원래는 이름도 호적조차도 없었던 불가촉천민 하리잔인 청년이었다.
뒤늦게 인도 군 당국은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파르바티의 제작자인 Dr.Q에게 어떻게든 시스템을 초기화 할수 있겠냐고 거의 매달리며 사정을 했지만 그에 대한 Dr의 답은
"내 딸이 선택한 사람이니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라네. 정 초기화 한다면 못할것도 없지만 그건 곧 딸을 처음부터 새로 다시 만들어내는것과 같으니 실전배치는 적어도 3년뒤로 미뤄지겠지. 알아서들 해봐"
라고 말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일은 일사 천리로- 그렇다면 어떻게든 '저 망할 기둥서방을 한사람몫으로 만들어놔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만 이것이 수준의 거진 미션 임파서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ㅡ
"음?"
문득 훈련장 전망대 안에서 훈련장 한가운데에 '아크로배틱한 현대 추상 조각'을 보고있던 캐서린-캐서린 웰링턴 기술주임의 눈이 반짝였다.
"......저건...아니, 있을수 없어 저건."
아무도 안들릴정도로 중얼거리고는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조그만한 PDA를 하나 꺼내고는 익숙한 동작으로 엄지손가락만으로 버튼을 꾹꾹 눌렀다
[예, 통제실입니다. 캐서린 주임? 무슨일이십니까]
"방금전에 아준의 동작시퀀스 있잖아, 기록된거지?"
[물론입니다. 훈련장에서 행해지는 아준의 모든 동작시퀀스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자동기록됩니다. 무슨 문제라도?]
"너도 FRX전문 메카닉이라면 눈치채지 않았어? FRX가 '저런 동작을 할수 있을정도로 편리한 놈들'이었나?"
[......네? 아... 그러고보니....]
"이후는 다른 팀원에게 맡겨둬, 너는 방금전의 그 동작시퀀스를 좀더 정밀하게 분석해줘."
[알겠습니다 주임]
그렇게 교신을 끝내고.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위아래로 까딱거리는 장성과, 차가운데다 밥맛없는 '유엔 FRX 감시기구 파견인'이 서있는 방에서 캐서린 연구주임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섰다.
"후우....."
훈련이 끝났을때는 이미 날은 늬엿늬엿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땀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절어버린 모습으로, 모든 분란의 소용돌이의 태풍의 눈- 나가르는 파일럿 전용 락커룸에서 FRX파일럿 전용 슈트를 벗었다.
슈트를 벗자 드러나는것은 태양볕에 진갈색으로 탄 마른-그렇지만 단단한 근육의 신체. 그 몸에는 수많은 자잘한 흉터들이 가득했다
한숨과 함께, 슈트를 벗어 던진 채로 락커룸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ㅡ피곤하다"
육체적 피로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이정도의 육체적 노동은 일상이었으니까
단지 피곤한것은ㅡ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날, 파르바티가 그를 찾아준 날로 부터 정확히 한달-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고, 바뀐 환경은. 그에게 한참은 해결되지 않을 '소화불량'을 안겨다 주었다.
한달전만 해도 그는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던 불가촉 천민, 지금은 인도 육군의 자랑거리인 FRX의 명예로운 파일럿
굳이 그처럼 극적인 인생역전이 아니라, 겨우 병장이 소위로 진급만 해도 소화불량에 시달릴텐데 이쯤 되면 이건 소화불량이 아니라 평범한 고등학생이 이차원 판타지 세계로 날아간거나 마찬가지였다.
ㅡ오물만 치우면 됐다
명령을 듣고, 매도를 당하고, 지나가는 개만도 못한 그런 인생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뭘 멍하니 있냐 멍청아"
멍하니 앉아있던 그의 청각을 자극하는 락커의 얇은 철판을 치는 굉음과 카랑카랑한 목소리, 퍼득 그가 옆을 바라보자 어느순간인가 들어와있는 칼리가 서 있었다.
"어, 칼리....."
달라붙는 스판 이너웨어만 입은 남자를, 인도 전통복으로 몸을 감싼 여인이 내려다보고 있는 괴이한 시츄에이션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츄에이션과는 달리- 여자는 얼굴을 붉히거나, 이런 저런 전형적인 스텝 따윈 없었다.
"빨리 씻고 옷갈아입고 나와, 슬슬 저녁시간이니까. 언니도 기다리고 있잖아, 기다리게 하면 콱 너부터 먹어버린다?"
여전히 붙임성 없는 목소리로 잡아먹을듯이 으르렁 거리며 말하는 칼리를 나가르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야! 알아들었어?!"
"어...아 응, 알았어 칼리"
"아-! 정말이지! 왜 언니는 저따위 인간을 데려와가지고는! 빨리 튀어나오기나햇!"
여전히 으르렁 거리면서 뒤로 홱 돌아서 방문을 쾅 소리가 날정도로 세게 닫으면서 나왔다.
ㅡ그래도, 이 남잔, 나가르는
파르바티의 다정한 말 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져 왔다.
"여기에요, 바로 이 동작 시퀀스 말이죠."
어둠속에서 모니터의 화면만 점멸하고 있는 IFRX 개발팀의 센트럴 시뮬레이션 센터 에서 캐서린 기술 중위와 개발팀의 기술자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몇시간전, IFRX 아준이 벌인 아크로베틱한 동작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아준의 관절과 프레임의 하중, 기타 물리적인 여러 복잡한 수식들과 그래프가 마구 펼쳐지고 있는 같은 동작을 재연하고 있는 막대모델이 있었다.
"확실히 이건...."
"이상하지?"
그 둘의 말에 맞춘듯, 아준의 '어느 동작'에서, 동작을 재연하고 잇는 막대모델의 여러 수치와 수식들이 비프음의 비명을 질러대며 '무리' 라고 대변하고 있었다.
"이상한 정도가 아닙니다, 이건 있을수 없어요. 물론 기체 자체의 성능은 아준의 하중과 여러 물리법칙을 버틸수는 있지만 이정도로 까지 섬세한 하중 이동과 균형은 아마 MSN의 연산으로도 거의 불가능할겁니다."
"......."
"그러니까 단정하자면, 아준은 '절대 이 동작을 할수 없습니다' 이론상 불가능한것이 현실에서 이렇게 가능할리가....."
"하지만 했잖아. 그녀석.... 나가르는"
캐서린 중위의 가느다란 무테 안경이 순간 모니터의 빛을 반사시켰다.
"설마, 그 '기둥서방'이 그정도로 섬세한 균형감각을 지니려고요? 그저 그녀석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MSN 둘이 필사적으로 연산제어를 한 탓이겠죠. 그것도 아니면 그저 완벽한 우연일겁니다"
"흠, 우연이라..... 그렇게 쉽게 치부해버려도 되는것일까?"
ㅡMSN 파르바티의 M.M시스템
분명히 닥터의 말씀 대로라면- 그것은 FRX와 자신과 가장 적합도가 맞는 상대를 고르는것....
슈크 장군은 그 시스템이 오류투성이었다고 매도하고 있지만. 만약에 나가르가 이런 동작을 성공시킬정도의 능력을 지녔다면....?
".......제대로 작동된 걸지도 몰라"
"네?"
"아냐, 아무것도..아니야"
하지만 그렇다 한들, 제 아무리 '최강의 검'이라 한들,
그것이 들어 올려지지가 않으면 쓸모가 없는것이다.




덧글
오토군 2009/06/03 23:02 # 답글
텍스트로 떠서 천천히 음미할께요∼덧 : 복사중에 보니 '실내에선 금연입니다' 저 대사 저도 마르크스 취역했을 때 함교에서 써먹으려 한건데에에에
明鏡止水 2009/06/26 09:54 # 답글
KFRX 대대의 얘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